로켓이라는 직업
진로에 고민하는 젊은 청춘들에게
로켓이라는 직업
(ロケットを仕事にする)
㈜우에마츠전기 (NASA보다 가까운 동네 로켓공장)
박준성 올림
오늘 종일 빗 속에서 로켓을 쏘며 그라운드가 찢어지게 뛰어다니며 헬맷에 젖은 빗방울이,
선박과 항해, 그리고 해군의 추억을 상기시켜준다.
제1공장에 마련된 내 책상에 앉아
기록적인 폭우 속에서도 로켓은 올라간다. 로켓을 보며 이게 로켓인지 배인지 가끔 헷갈리기도 하고, 로켓 공장에 있는 지금도 내가 배에 승선해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지 않은지 헷갈릴 때가 많다.
사랑하는 우리 젊은 후배님들께,
"박상, 로켓도 이걸(선반)로 만들어요. 로켓도 둥그니까요."
우리회사에서 로켓 동체 제작을 전반적으로 책임지는 호리구치상이 내가 만지고 있는 낡은 선반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그 선반은 자그마치 50년은 됐을 법한 골동품이며, 우리 회사 주력 상품인 전자석을 만드는 데 쓰이는 기계입니다. 그러나 이 기계는 최첨단 우주개발 연구에 대활약하기도 합니다. 매일 그 기계를 만지작 거리는 필자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염화미소(拈花微笑), 부처님이 아무 말 없이 꽃송이를 집어올리자, 제자들이 모두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으나, 마하가섭 존자만이 그 뜻을 읽고 파안 미소했습니다. 결국 마하가섭은 석가모니의 진리를 전수받게 됩니다. 연꽃은 탁한 연못에서 피어나지만 꽃은 아름답고 깨끗하기 그지없습니다. 즉 부처님은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오히려 인간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는 진리를 나타내셨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눈 앞에 보고 있는 대상이 꽃인지 잡초인지, 당장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잡초와 같이 여겼던 내 도구가, 인생이, 사업이, 사람이, 학교가, ... 언젠가 꽃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세수대야를 만드는 동네공장이 촌구석에 있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그곳으로 뛰어들 용기가 있나요? 여기 우에마츠전기는 국가사업으로나 가능할 법한 로켓 개발 및 발사를 민간 작은 기업에서 하고 있습니다. 최첨단 로켓을 개발한다니 뭔가 있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상 여기서 로켓 동체를 제작하는 과정은 세수대야를 만드는 프로세스와 똑같습니다. 로켓의 형상도 세수대야와 마찬가지로 둥글기 때문에 선반이라는 기계로 깍습니다. 세수대야를 누구보다도 잘 깍을 수 있다면, 방망이를 누구보다도 잘 깍을 수 있다면 우리 로켓 회사에서도 그를 인재로 반겨 맞이할 것입니다. '방망이 깍는 노인'일지라도 말입니다.
인간문화재 조선장(造船匠)이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하단 어촌 항구에서 황포돛배 키를 깍고 있다.
이 때 같이 제작한 황포돛배로 이 분은 인간문화재로 등록되었다. 2014년
완성하여 배에 장착한 키. 내 배(위 그림)는 선실이 있는 집이자 항해도구로서 현재도 하단 어항에 전시되어 있다. 불과 일세기 전만해도 이러한 범선(전통 선박)은 최첨단 기술적 도구였고 부를 상징하는 고가의 요트같은 존재였다. 로켓도 언젠가는 전통 기술(craft)이 될 줄 모른다. 내가 스승 김창명 조선장님 나이(80세)가 되었을 때 내가 지닌 로켓 기술도 '전통'이라는 이름이 붙은 구시대 유물로 남을 것이다.
여러분들 앞에 펼쳐진 길은 오직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로켓을 개발하며 발사하기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우리 회사에서 로켓이라는 야망을 품고 입사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정작 어렵게 입사해도 공장의 단순 기계 제작부터 부단히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 품었던 꿈과의 갭을 이기지 못하고 도중에 그만두는 사원도 있습니다. 그런 사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로켓이라고 대단한 걸 하는 줄 알아요? 그 일은 방망이 깍는 일과 다를 바 없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만약 여러분들이 세수대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며 자기 일에 한탄하고 있다면, 저는 그런 사원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세수대야 깍는다고 자괴감에 빠지지 마세요. 그 일은 로켓을 만드는 작업과 동일한 손놀림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 앞에 펼쳐진 길은 다양합니다. 세수대야를 깍아도 로켓개발자가 되기도 하며, 로켓개발자로 시작했지만 이내 좌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 앞에 놓여진 길이 비록 하찮을지라도 그 고개길을 넘어 분명 여러분들이 희망하는 희열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빗 속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빗 속에서 로켓 작업을 하는 우리들
여기는 설국의 고장, 홋카이도입니다. 7월임에도 기온이 8도까지 내려가, 올해 난방을 틀으면 틀었지 에어컨 틀 일이 없어 쾌적합니다. 정작 어제는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한국에는 연일 30도를 웃도는 더위에 24시간 에어컨을 튼다고 하지만! 이번 주는 기록적인 폭우로 매일 폭우 속에서 로켓을 쏘고 있습니다.
북양(베링해)항해, 폭풍을 뚫고 항해, 브릿지에서 견시 중 2004년 여름
동료 항해사들과 (알래스카 더치하버) 2004년 여름
헬맷과 폭우, 정비복 그리고 ARC 연수실에 있는 내 방 12호! 이 모든 단어들이 북양(베링해) 항해 견습항해사 시절 배를 탔던 기억들 속에 등장했던 날씨, 옷, 선실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내 방은 선실처럼 3층 침대가 3열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수실(선실?)이 16실이나 있으니, 약 200명의 선원이 승선할 수 있는 배와 같다. 아침 잠에서 깨면 당직을 서기 위해 마치 브릿지로 올라가야 될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무중력실험탑은 브릿지와 비슷해 홋카이도가 배라면 우리 회사는 그 중심, 즉 브릿지라 해야 될까요? 여기는 마치 섬처럼, 배처럼 주택가와 동떨어져 있어,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육지에 있으면서도 내 방과 회사를 마치 선실과 브릿지처럼 왔다갔다 하기에 바쁩니다. 마트도 거의 가지 않습니다.
오전 모델로켓 발사 작업과 공장 모노즈쿠리(하드웨어 제조) 작업이 끝나고 2시가 넘어 공장 한 켠 사무실 책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빗방울에 흠뻑 젖은 헬맷을 책상 위에 놓으며 내가 항해사인지 로켓개발자인지 잠시 꿈을 꾸듯 생각에 잠깁니다. 예전 배를 타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상 로켓공학과 선박공학이라는 학문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로켓도 배(Space ship), 선박도 배(Ship) 이렇게 둘 다 SHIP(배)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왜 조선공학자가 로켓개발을 하기 위해 왔는지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실제로 로켓개발의 기술은 선박기술이 모태가 되었기 때문에 조선공학자야 말로 로켓개발자에 가장 적합한 엔지니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길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조선공학이 항공우주공학의 발판이 되어 훌륭한 로켓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또 그 기술로 장인 정신이 깃든 공예품(craft)을 제조하는 인간문화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연구실에 앉아 선박유체역학(Marine Hydrodynamics)을 하던 저는 지금 공장 안 사무실에 앉아 항공역학(Aerodynamics)계산을 합니다. 엑셀 사용기간이 만료해 캐쉬카드(Debit card)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등록하는데, 카드 등록이 안 돼, 하루 종일 카드번호며 유효기간등을 입력하다가 세월 다 보냈습니다. 이러다 언제 로켓 설계할거여~!
쿵쾅거리는 폭우 소리, 공장 내에 울려퍼지는 그라인더질(시아게) 소리, 로켓소리,.... 다양한 백색소음이 더 분발하게 합니다. 헬맷을 쓰고 갑판과 브릿지를 오갔던 북양항해 시절, 게리슨모를 책상옆에 잘 접어두고 조선공학연구를 하던 시절이 떠오른 김에 글을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7월 5일
우에마츠전기 12호 선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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